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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Nationalism/Text

日本の近親

by ツララカララ™ 2021. 12. 29.
아카마츠는 1909 년 효고현 출신으로, 이 당시는 아직 요바이 풍습이 남아 있었다고한다. 적당한 상대가 없으면 생부와 생모가 그 상대를 맡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공동체는 요바이 전에 성교육이 이루어졌다. 덧붙여서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잘 모르는 예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양육했다.


1950년대까지 일본 시골 지방에서는 어머니가 죽거나 불구가 되면 봉건적인 가족 전통에 따라 딸이 아버지와 결혼한 사례가 있다. 심지어 아버지가 가장 역할을 못하게 되면 아들이 그 역할과 아내를 물려 받았다. 특이하게도 전통적인 공동체 내에서는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나 전통 가족 내에서 이러한 것은 정상적이고 권장될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아래는 출처 원문.
One indication of what is likely to be found is a 1959 study by Kubo showing that there were still rural areas in Japan where fathers married their daughters when the mother had died or was incapacitated, "in accordance with feudal family traditions.(154) Kubo concluded that incest was considered "praiseworthy conduct" in many traditional rural families. In the 36 incest cases he studied in Hiroshima, he found that there was often community moral disapproval of the families who lived in open incestuous marriages, but that the participants themselves did not think of it as immoral. In fact, when the father was unavailable to head the family, his son often took over his role and had sex with his sister in order "to end confusion in the order of the home." Other members of the family accepted this incest as normal.

이게 뭔 싸구려 야설이냐 하겠지만 102회 인용된 심리역사학회지(The Journal of Psychohistory) 1991년 가을에 실린 논문 내용이다. 정확한 출처는 DeMause Lloyd, "THE UNIVERSALITY OF INCEST," The Journal of Psychohistory. 1991 Fall;19(2). 이 논문에서 인용한 논문은 일본 연구자 논문으로 1959년 히로시마 지방의 36가지 사례를 보고한 Shunichi Kubo, "Researches on Incest in Japan," Hiroshima Journal of Medical Science 8(1959): 99-159. 논문이다.

일본 전통 민속학 연구에 따르면 과거 전통 성인식 겸 성교육의 일환으로 남자아이는 褌祝(훈도시이와이), 여자아이는 요바이(夜這い)를 치렀는데 민속학자 아카마츠 케이스케(赤松啓介)가 쓴 '요바이의 민속학'(夜這いの民俗学, 1994년, ISBN 4480088644)에 따르면 자식의 온전한 첫 경험 상대가 없는 경우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신해 자식의 상대를 맡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소년끼리 서로의 어머니의 "맛"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딸이 어머니의 잠자리 상대를 끌어들이는 사례 등이 요바이의 민속학 pp. 3-4에 보고되어 있다.

미국의 역사심리학자 Lloyd deMause의 상기된 논문(THE UNIVERSALITY OF INCEST)에 의하면 일본에서 모자근친상간의 경우 일본 전체 근친상간 중 29%에 달하며(전체 인구 중 29%가 한다는 게 아니라 근친상간을 한 사람 중 29%라는 말이니 오해 금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다고 하며, 일본 도쿄에 근친상간 상담소를 개관하였더니 상담전화가 폭주했다고 한다. 다만 일본 통계청에서는 이에 대해 전면부인했다고 한다.
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흔히 일어나는 모자근친상간은 사춘기의 아들의 자위행위를 하다 들켰을 때라고 하며 이때 엄마들은 주로 위로와 충고를 하며 모자근친상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른 경우로는 성교육을 위해서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이는 자신의 상담소에 들어온 상담전화를 통계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례들의 영향인지 일본어에는 부모자식간의 결혼을 親子婚라고 쓰고 おやこたわけ(오야코타와케)라고 훈독하는 단어가 있는데, 부모자식간의 결혼이란 뜻에다가 부모자식간의 성 행위를 지칭하는 비속어의 뜻도 있는 단어가 존재한다.출처 제39회". 일본 국어 대 사전 제2판 홈페이지. 쇼가쿠칸(2002년 3월 25일)참고 경멸하는 단어이지만 따로 지칭하는 '용어'가 존재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21세기인 2019년에도 미성년자인 딸과 성관계를 한 아버지가 무죄 판결을 받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대 일본어에서 오빠라는 단어인 兄(せ)와 여동생이라는 단어 妹(いも)는 각각 남편과 아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관련 연구에서는 당시 이복(異腹) 또는 이부(異父) 남매간의 혼인이 매우 흔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中村彌三次 (1922年10月20日). “祉會法學二付テ” (PDF). 早稲田法学 ( 早稲田大学) 1 (1): 1-73. ISSN 0389-0546 . NAID 120000793863 2011年9月11日 閲覧)

근친혼〈킨싱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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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혼이란 사촌 간을 포함한 친척끼리의 결혼을 말하며 혈족결혼[케츠조쿠켁콩()], 또는 근친결혼[킨싱켁콩()]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회에서나 근친자의 통혼은 금기로서 금지되어 있는데, 근친혼의 범위 및 위반에 대한 처벌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일본은 근친혼이나 근친 상간에 대해서 경악할 정도로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나라()시대 이전 즉 『코지키()』·『니혼쇼키()』에는 왕족에서 이종 형제자매의 결혼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종 간의 결혼은 사촌간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혈통의 순수함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장려되기까지 했다. 고대의 소가씨() 및 헤에안() 시대 이후에 계속된 황실과 후지와라씨()와의 혼인도 근친혼의 연속이었다. 과거에 농업 후계자 확보 등의 현실적인 요구로 친족 간의 결혼이 적지 않게 행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조카와 삼촌의 내연관계도 자주 있었던 일이며 이것도 지역 사회나 친족 내에서 별다른 저항감 없이 용인된 예도 존재한다.

전후 개정 민법에서는 4촌끼리의 결혼까지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전쟁 전에는 친사촌·고종사촌·외종사촌·이종사촌 등 구별 없이 사촌간의 결혼을 금기시하지 않았고 숙질간의 결혼도 가능하였다. 이것은 촌수로 말하면 3촌까지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금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모, 형제자매의 2촌 이내의 근친에 국한되었다. 심지어 고대의 미개 사회에서는 고종사촌이나 외종사촌간의 결혼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던 기록도 나타난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전사한 형을 대신해서 동생이 형수와 사는 것을 미덕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간혹 있었는데 그것은 가문의 재산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과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던 사토오 에에사쿠()수상의 부인이 사촌여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일본인이 근친혼에 대해 관용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 작가 시마자키 토오송()은 상처를 했을 때 자신을 도우러 온 형의 딸을 임신시키고 그 사실을 『신생()』이라는 소설로 발표까지 하지만 그는 사회에서 매장되기는커녕 그 뒤로도 계속 승승장구한다.

일본에서 근친혼이 많은 이유로는 친족 관계에서는 사회적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적고 결혼을 통해서 더욱 친분이 두터워질 수도 있으며 결혼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경제적인 관점과 수많은 섬이나 높은 산악지대로 둘러싸인 지리조건 상, 먼데서 결혼 상대를 찾기보다는 좁은 땅에서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것이 근친혼에 대해 둔감하게 된 것은 물론 습관화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근친혼은 기형아를 많이 배출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도 많다. 어느 학자는 기형아를 배출하는 병인 세계 워너증후군의 80.5%가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도 하여 근친 상간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근친혼이 가장 성행했던 일본 왕실에서 저능아나 병약자의 왕이 많았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근친혼〈킨싱콩〉 [近親婚] (키워드로 여는 일본의 향, 2009. 3. 26., 김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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