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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Nationalism/Text

パラオの橋で捏造するネット右翼

by ツララカララ™ 2022. 3. 26.

팔라우 다리 붕괴는 일본 감리단의 책임

팔라우 다리 감사보고서

보고서를 살펴보자!

*원문번역

이 내용에서 알수 있듯이 일본과 영국의 감리 회사는 K-B브리지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1993년 ABAM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감리를 하고 나서 시작된다. ABAM은  앞으로 추가적인 휨이 발생할 것이고, 추가적인 휨을 방지하기위해서 외부에 추가로 Post-tensioning을 제안했다.Mstthias이것이 붕괴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ABAM의 요청에 따라 8개의 추가적인 외부의 post-tensioning작업을 하게된다.이러한 추가적인 작업은 시간에 따른 응력변형을 무시한것이였기 때문에 응력분포에 발란스가 깨지게 되어 K-B 브리지는 어느날 갑자기 취성 파괴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야마토 감리회사의 잘못으로 kb다리는 붕괴

 

팔라우 KB브릿지 일본 날조

지겨운 놈들. 날조와 반복 반복 반복...

디시인사이드에서 읽고 일단은 옮겨둡니다. 

KB브릿지 붕괴 책임 날조 사건 
(05~07년도쯤에 일본 웹에 폭발적으로 풀렸고, 혐한류 만화책이 다룬 소재이기도 함)
ウリナラの建築技術は世界一(パラオ編) - YouTube (지금도 혐한들이 열심히 한국을 까고 있음)
*일본 웹에 광범위하게 퍼진 KB브릿지 붕괴 한국 책임설의 내용(일본쪽 주장이야)
KB 브릿지는 , 「Koror-Babeldaob Bridge」의 이름대로 수도 코로르섬과 공항이 있는
바베르드아브섬을 연결하는 다리에서 , 섬나라 팔라우의 교통의 요충으로서 1977년에 개통했습니다.
건설하기에 즈음해 일본의 카시마 건설도 견적을 보냈습니다만 
한국의 하청 회사가 일본의 반액으로 낙찰해 , 공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한 부실 공사였던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의 굳히는 방법조차 터무니없었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던 현지 주민은 당초부터 이 다리에 불안을 안고 있던 것 같아 , 차로 다리를 건널 때는 
만약 바다에 떨어져도 곧 도망가도록(듯이)와 반드시 창을 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 준공 직후부터 다리의 중앙부가 굴곡 시작해 15t였던 통과 제한 중량이 곧바로 10t에까지 줄여졌습니다.
이 굴곡은 이윽고 , 통과할 때 이상한 흔들리고를 체감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 , 폭락 사고가 일어나는 무렵에는
서행 운전으로 건널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9월 28일 , 악몽은 현실이 됩니다.

KB 브릿지는 갑자기 두동강이에 접히고 바다에 꽂혔습니다. 

우연히 통행 차량의 적은 시간대였어요입니다만 , 1명 사망자도 나와 버렸습니다.
하시노우치부에는 전선 , 수도 , 전화선이 통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 팔라우의 라이프라인은 분단 되고 
수도 기능은 마비. 한때는 국가 비상사태 선언도 나왔습니다. 이 때 , 팔라우와 자매 도시의 미에현으로부터는
컨테이너 공수로 음료수가 옮겨지고 있습니다. 


팔라우 정부는 , 곧바로 다리를 만든 한국의 업자에게 배상 청구하려고 했습니다만 
이 때 벌써 이 회사는 해산하고 있어 , 단서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겠지요? 
이 건설회사는 1994년에 서울에서 폭락한 다리를 시공한 업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어찌할 바를 몰라할 뿐의 팔라우 정부였어요입니다만 , 일본에서는 우선 가설다리의 건설을 원조해 
일본의 ODA 정부개발원조에 의해 약 30억엔의 새로운 다리를 무상으로 걸쳐 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시공에 해당한 것은 인연의 카시마 건설입니다. 공사중 
현지의 사람들은 「카시마」라고 하는 말을 기억해 일본인을 눈에 띄면(자) 「고마워요 카지마」라고 얘기하는 아이도 아픈 것 같습니다. 


*일본쪽 주장 요약
이 일본인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국 건설사가 일본의 카시마 건설을 물리치고 싼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하면서 부실공사를 해서 브릿지가 무너졌다는 것
영국 대학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일본인들의 날조였어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일본과 영국의 감리 회사는 K-B브리지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언급 
문제는 1993년 ABAM 엔지니어링 회사(일본)에서 감리를 하고 나서 시작되었음 
ABAM은 앞으로 추가적인 휨이 발생할 것이고, 

추가적인 휨을 방지하기위해서 외부에 추가로 Post-tensioning을 제안합니다
ABAM의 요청에 따라 8개의 추가적인 외부의 post-tensioning작업을 하게되는데
이러한 추가적인 작업은 시간에 따른 응력변형을 무시한것이였기 때문에 응력분포에
발란스가 깨지게 되어 K-B 브리지는 어느날 갑자기 파괴됩니다.



5 DISCUSSIONS AND CONCLUSIONS
The analysis provides stress distributions at each important stage during the life
of the bridge. The calculated stresses never exceeded the allowable values.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collapse of the bridge was probably not due to excessive
stresses, caused by axial forces and bending moments. Even assuming a low
concrete quality would not lead to a collapse. Especially a primary compression
failure at the support as supposed by SSFM seems not possible.
This can be supported by a simple consideration: Assuming a linear stress
distribution and a compressive strength of 35 MN/m2 the minimum force required
to cause a compression failure at the top before a tensile failure at the bottom is
366 MN. Such high compressive forces could not be calculated and are very
unlikely. In the same way a minimum positive bending moment can be calculated
as 1700 MNm which seems also not to be very probable.
But it has to be considered that
위에서 보는 것처럼 역학적 해석은 다리의 균형이 무너질만한 어떠한 초과한 하중도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콘크리트의 품질도 다리의 갑작스런 파괴와는 관련이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군요


In the calculations it was assumed that the section was not cracked. A cracked
section would possibly not be able to resist the compressive stresses after the
retrofit. These cracks could be due to the tensile stresses before the strengthening
program or external effects like a damage inflicted on the deck during the
retrofitting operation

.->결국 추가적으로 장착되었던 8개의 post-tenssioning이 다리의 발란스를 무너트려서
취성파괴가 일어난 것이라고 볼수 있음.
한국의 건설이나 K-B브리지의 설계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그건 외부적인 요인 ABAM의 감리에서의 실패가 될수도 있고
외부의 온도 변화가 문제가 됐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것은 본설계나 시공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을 비방하는 일본 사람들이 좋은 회사라고 말하는 카시마 건설은
베트남에서 일본 정부의 ODA로 다리를 만들다가 건설중이던 다리가 붕괴되어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 큰 뉴스가 되었지요. 

*요약 
우라나라쪽 시공에는 문제가 없었고 일본쪽에서 추가적으로 제안한 post-tenssioning이 문제가 되서 다리가 붕괴됬다는것. 그리고 일본쪽 건설사는 베트남에 다리를 무너뜨린 전례가있음.


*그외 답변들

1
4년 전쯤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팔라우 다리 시공사가 
동아건설이고 책임감리 및 건설 책임사는 영국계 회사로 기억하고 있거든.
건설 공사에서 붕괴 등등의 큰 사고는 시공사 책임 보다는 구조설계 및 관리를 담당하는 감리사에서 문제가 큰 것이기 때문에.팔라우 다리 붕괴 이후.. 일본애들이 공사 수주하면서 
날조 재료로 한국 회사가 문제가 있었다..라는 식으로 누명을 씌우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첨부한다면 팔라우 저동네도...일본의 침략으로 유린당한 곳으로
동남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징용으로 끌려가 전쟁 말기에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군이
끌고온 타국 사람들을 다 죽였던 유적지도 있을 정도인 곳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적지를 보기 위해 일본 관광객이 많이 오는 탓에
어쩔수없이 팔라우도 일본에 호의적이긴 하지. 
일본 왕이 팔라우 방문해서 과거 역사를 사과하고 우호니 뭐니 퍼포먼스까지 했던 곳이여... 


2
진짜 웃긴 것은
한국이랑 일본이 각각 반쪽씩 지은 페트로나스 쌍둥이 타워 가지고 
한국 삼성건설이 기울어지게 지었네 뭐네 엠병을 떠는데
정작 삼성은 이후에 두바이 초고층 타워 연속 수주하고 일본은 연속으로 망하고 있는 현실. ㅋㅋ 
한국이 세계 최고 빌딩을 세우고 있으면 일본인은 싸게 낙찰해서 짓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반대로 일본이 빌딩을 세우면 일본의 기술이 우수해서 짓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이게 바로 지금 일본이 하나 하나 몰락하는 이유.
자기들이 세계점유 1위하면 기술력 한국이 세계점유 1위하면 싸기 때문이다
싸서 1위하면 중국이 다 1위하겠다ㅋㅋㅋㅋㅋ 


3
들어본 적 있어. 말레이시아 쌍둥이 타워를 만드는데 양쪽 중에서 한국쪽 건설사가 더 빨리 완공했고
일본측은 더 늦게 만들어진데다가
한쪽이 몇센치미터 빗나가게 만들었다는군. 그런데 일본 웹에서는 반대로
일본의 잘못을 한국에 대입하고 있어. 그게 자칭 혐한들의 현실이지. 
일본이 지은 쪽의 타워는 엘리베이터가 작동할 때마다 심한 진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대로 혐한은 한국에 뒤집어 씌우고 있지.
일본은 정경유착이 너무 심하고, 매스미디어도 그 사슬에 묶여 있지 
와..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야. 페트로나스 타워의 설계는 미국에서 했고
애시당초 일본회사와 한국 회사는 시공회사인데도.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한국측이 일본측 설계도를 배껴서 승리했다'라고 뻔뻔하게 거짓말한다.
한국을 비방하고 싶어서 온갖 핑계를 대는군. 일본의 국민성은 비열함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인조이 날조 드립은 셀수도 없다. 다 우익들이 조직적으로 만들어서 데이타베이스 해 놓은 것.
왜구들 들고 오는 역사 자료들이 모두 똑같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말레이시아 쌍둥이건물 짓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일주일 먼저 공사에 착수했는데 우리나라가 더 빨리 완공ㅋㅋ
몇년전에 쌍둥이건물 건설하는거 다큐로 봣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공사중에 한쪽건물이 기운다고 했는데
일본은 한국쪽이 문제가 있다고 덮어씌웠고 
혹시 우리쪽이 잘못했나 하고, 말레이시아 측에서 다시 검토한 것을 확인했는데 한국 쪽에는 이상이 없고
일본이 문제였음 


4
다리 붕괴원인은 말그대로 하중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결함이 문제였지, 한국하고는 관계없음. 
그리고 붕괴 두달전인가 일본회사에서 안전진단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보고서 작성했다가 붕괴하는 바람에 엄청 욕먹었었지. 진짜 이 오래된 소스를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다니. ㅋㅋㅋ 
추가적으로 외국계 투자 개발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낀점...전세계에서 건설분야 최고는 우리나라라는거.... 
토목공사나 Skycraper ( 한국 건설사들 외국에서 왠만해서는 건물 건설 안함. 이유는 이득이 남지 않음...
요즈음에는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는 고층빌딩 빼곤 하지도 않음. )짓는거 한국이 최고라는거
외국 기업이나 정부쪽에서 다 알고 있음. 고속도로나 터널, 교량....한국이 최고....
그러니 제발 일본 쪽발이는 그만 입닥치면 좋겠다는거... 


5
일본애들 넷 찌질이들 특성이 한번 제대로 발리면 찍소리도 못하고 한동안 그 건은 들고나오질 않아 . 
그런데 역으로 한국인들은 그렇게 실컷 반박 하고 자료 들이대서 눌러 놓고 그 자료들을 간직하지 않는다는거지. (나역시도 그랬고) 
그래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일본애들은 또 다시 그 자료를 내놓으며 앵무새 놀이를 시작하거든. 
그럼 또 한국인들은 그때서야 다시 자료 찾느라 부산스럽지. 조금 오타쿠스럽게 자료를 모으고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접근성을 만들어 놓고 인위적이 아닌 조직성을 가지고 저런짓을 하는면에서 보면 우리가 좀 밀리긴 해. 
더 웃기는건.. 다리 붕괴후 일본애들이 재공사 하면서 팔라우 다리쪽에 2차세계대전
한국인 징용자 사망위령탑이 있었는데 그걸 없애버렸다는거지..
어쨌거나... 뭐 한순간의 놀이로 일본애들의 조작질에 반박하려거든 시간은 진짜 잘가...
그런데 뭐 진짜 정의감이나 진실에 대한 측면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사소한거라도 그놈들 상대했던 자료들은 모아 두는게 좋아...
지금 우리나라의 넷에도 퍼져 있는 낚시라는 넷 문화가 2ch에서 인조이를 통해 번진 것...초기부터 경험해본바...
그당시의 일본애들에게 한국인을 상대하면서 메뉴얼중에 하나가.. 
한국인은 감정적이니 근거,자료등을 요구하면 홧병나는 한국인이라는 식이었으니까.... 


6(일본인이 직접 팔라우로 날아가, 비석에 칼로 흠집이 난 부분을 지적하며, 한국인의 부실 공사로
다리가 부서진 결과라고 한국인을 비웃자 내놓은 답글)

비석은 두개가 존재했어. KB브릿지 작업에 하도급 업체로 참여를 한 업체는 완공하고 나서
사장의 이름이 적힌 한국어 기념비를 만들었지. 이게 다리가 무너지고 나서 한국 업체는 잘못이 없었지만. 
억울하게 비석의 글자가 훼손당한다. 정말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일본 감리회사)이 빠진 자리에
대신 매를 맞은 셈이지. 그리고 무너진 KB브릿지 아래에는
또 다른 비석이 있었는데. 이건 KB브릿지 건설에 참여한
한국 업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한국인들이 힘을 합해 만들어 놓은 위령비였는데 
일본이 팔라우에 시설을 지으면서 힘든 작업을 시키기 위해서 한국 본토에서 강제징용으로 4천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일을 시키고 결국 고된 노동과 풍토병으로 2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죽었다고 한다... 팔라우에 가면 그 시절의 한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다리가 아직 있어.. (이름은 aigo 브릿지)그리고 일본 정부는 KB브릿지 붕괴 사건을 무마하려고
일본의 ODA로 새 브릿지를 짓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위령비를 파괴한거야. 

그리고 팔라우에 ODA로 브릿지를 건설한 일본 건설사는 베트남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킨 바로 그 건설사다.
위령비를 파괴하다니. 정말 나쁜 짓이군.
이 사건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전부 한국에 뒤집어씌우는 일본인들의 추한 마음과, 
현지 일본인들의 비도덕성이 밝혀진 셈이지.. 감리를 오는 일본인들은 어디에서 숙박했을까? 바로 팔라우의 일본 교민들의 집이었겠지.
결국 현지 일본인들은 자세한 사정을 알 가능성이 높아.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위령비를 부수는 것을 막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국인 사장이 세워놓은 완공기념 비석을 소재 삼아 '저것은 한국인들이 시공한 다리인데 무너졌다'라고
팔라우에 놀러오는 일본인들에게 뻔뻔스럽게 거짓말했겠지. 그리고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무지를 이용해
한국인들이 다리 붕괴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유도를 했을 것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 사건 안에 전부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행세를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두번 죽이려고 하니까 

일본인들은 이 사건을 알게 되면. 브릿지 붕괴에 책임이 있는 일본 감리회사의 책임을 묻거나
위령비 파괴를 비난하는 대신. 이 사건의 진실 자체를 묻어버리려고 하겠지. 그리고 평소대로 일본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알고 있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런 사건이 수백번은 반복되었지.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믿지 않아. 
반대로 일본에서는 사실이 아닌 재료로 한국을 욕해도 다들 동조하고 아무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없으니
한국은 잘못이 없어도 일종의 이지메를 당하는거야. 

(일본인들이 준공식에 태극기 깃발이 있다고 해서 한국의 설계라고 억지를 부리자 내놓은 답변)
일본인들의 어이없는 날조 중 하나가. 준공식의 태극기 깃발이 있다고 해서.
KB브릿지를 한국이 설계했다고 억지 논리를 펴는 것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팔라우 사회는 일본인들의 이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원주민만이 아닌 여러국가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팔라우로써는 국가적 대공사인 브릿지 건축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팔라우의 인종별로 국기를 올려주었지. 이것이 일본의 민도 

*위의 답변들을 보고, 아래의 일본 블로그의 주장들을 보면
얼마나 우익(건설회사와 그와 연대한 일본의 이익집단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향수에 깊게 빠져 있으며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벼르고 있다)이 일본의 젊은 세대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에 동참하도록 만드는지 그 날조기술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음

극소수의 일본인들만 한국을 싫어한다고? 아닐껄? 일본 중년층들이 주체가 되서 혐한을 조장하고 날조해서 퍼트리는데 젊은이들이라고 별수있을까? 비슷한정서를 가지고 있고 분명 한국을 싫어하는 인간들이 훨씬 많을꺼야.

 

일본 넷우익들의 날조중 하나인 팔라우 다리 건설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araboja

1990년대 한국의 한 건설사가 일본이 제시한 금액의 반액으로

팔라우의 수도 코로르섬과 공항이 있는 바베르드섬을 KB 브릿지 말그대로 [Korea - Babeldaob Bridge]의 연결하는 수주권을 따낸다.

팔라우의 위치 보다시피 동남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 다리는 건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1996년 9월 28일 붕괴되고 만다.

붕괴 전

붕괴 후

이 사건이 있던것은 적어도 10년은 더된 일인데, 그때부터 일본 넷우익들은 이 날조를 꾸준히 계속해오고 있다.

우선 디시에서 퍼지고 있던 일본측의 주장을 적어본다.

KB브릿지 붕괴 책임 날조 사건 
(05~07년도쯤에 일본 웹에 폭발적으로 풀렸고, 혐한류 만화책이 다룬 소재이기도 함)
ウリナラの建築技術は世界一(パラオ編) - YouTube (지금도 혐한들이 열심히 한국을 까고 있음)
*일본 웹에 광범위하게 퍼진 KB브릿지 붕괴 한국 책임설의 내용(일본쪽 주장이야)
KB 브릿지는 , 「Koror-Babeldaob Bridge」의 이름대로 수도 코로르섬과 공항이 있는
바베르드아브섬을 연결하는 다리에서 , 섬나라 팔라우의 교통의 요충으로서 1977년에 개통했습니다.
건설하기에 즈음해 일본의 카시마 건설도 견적을 보냈습니다만 
한국의 하청 회사가 일본의 반액으로 낙찰해 , 공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한 부실 공사였던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의 굳히는 방법조차 터무니없었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던 현지 주민은 당초부터 이 다리에 불안을 안고 있던 것 같아 , 차로 다리를 건널 때는 
만약 바다에 떨어져도 곧 도망가도록(듯이)와 반드시 창을 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 준공 직후부터 다리의 중앙부가 굴곡 시작해 15t였던 통과 제한 중량이 곧바로 10t에까지 줄여졌습니다.
이 굴곡은 이윽고 , 통과할 때 이상한 흔들리고를 체감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 , 폭락 사고가 일어나는 무렵에는
서행 운전으로 건널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9월 28일 , 악몽은 현실이 됩니다.

KB 브릿지는 갑자기 두동강이에 접히고 바다에 꽂혔습니다. 

우연히 통행 차량의 적은 시간대였어요입니다만 , 1명 사망자도 나와 버렸습니다.
하시노우치부에는 전선 , 수도 , 전화선이 통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 팔라우의 라이프라인은 분단 되고 
수도 기능은 마비. 한때는 국가 비상사태 선언도 나왔습니다. 이 때 , 팔라우와 자매 도시의 미에현으로부터는
컨테이너 공수로 음료수가 옮겨지고 있습니다. 

팔라우 정부는 , 곧바로 다리를 만든 한국의 업자에게 배상 청구하려고 했습니다만 
이 때 벌써 이 회사는 해산하고 있어 , 단서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겠지요? 
이 건설회사는 1994년에 서울에서 폭락한 다리를 시공한 업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어찌할 바를 몰라할 뿐의 팔라우 정부였어요입니다만 , 일본에서는 우선 가설다리의 건설을 원조해 
일본의 ODA 정부개발원조에 의해 약 30억엔의 새로운 다리를 무상으로 걸쳐 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시공에 해당한 것은 인연의 카시마 건설입니다. 공사중 
현지의 사람들은 「카시마」라고 하는 말을 기억해 일본인을 눈에 띄면(자) 「고마워요 카지마」라고 얘기하는 아이도 아픈 것 같습니다. 

이 주장글쓴 놈도 어지간히 일뽕 쳐마신듯

이 주장만 읽어봐서는 마치 한국이 상당히 무책임한 시공을 강행했고 결국 실패햇는데

그 뒤처리를 일본이 다 해준것 처럼 적어뒀다.

그럼 반박 내용이다.

이 다리가 건설될 당시인 1970년대 당시 한국은 지리적 특성때문에 다리가 여러대 필요했었고, 그에 따라 다리를 국내 곳곳에 건설했었는데

 그런 한국에서 콘크리트 굳히는 법조차 미숙했다? 한국의 현대건설은 그 이전 1960년대에 이미 불가능이라고 했었던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에 성공한 바가 있다 그런 기술을 가진 나라가 고작 콘크리트 굳히는 방법도 몰랐다니

 처음부터 말이되질 않는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도 머리가 빠가는 아니였기에, 곧 일본측 주장이 상당히 터무니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영국 대학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http://www-civ.eng.cam.ac.uk/cjb/papers/p56.pdf 출저 논문

Louis Berger(영국) 회사와 일본의 국제 회사가 연구결과 다리가 안전하며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굴절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늘어날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0.9m 정도 향후 100년간)

이미 두 회사의 검사 결과 설계와 시공엔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향후 100년 정도가 지나면 다리가 구부러지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다리건설에 참여한 국가들은

- 설계 : Alfred A. Yee and Associates(미국), Dyckerhoff & Widmann AG(독일)

- 시공 : Dyckerhoff & Widmann AG(독일)

- 청부 : Socio Construction Co.(한국 투자법인) -> 이 회사는 당시 한국인 CEO를 가진 투자 법인 회사였지만 향후 팔라우 소속으로 바뀜

으로 심지어 한국 회사가 참여한 것도 아니였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회사와 영국의 또한 안전성 검사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은 자신들의 종특마냥 까먹어 버린듯 하다.

한국은 까지만 영국은 못 까는 열도 원숭이들 ㅎㅌㅊ?

게다가 붕괴의 원인은 오늘날까지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근데 이게 한국탓일리가

이 사실만으로도 일본의 터무니없는 날조를 밝혀 낼 수 있다.

깔끔히 무시당한 홍차국 성님들 ㅜㅜ

거기에 한국이 무책임하게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는 일본측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대우건설에서 1999년 부터 2007년 까지 Babeldaob섬의 순환도로를 완공하고 

중앙산업에서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팔라우의 정화조, 상수조 및 고등학교 건설을 했으며

유원건설에서는 1987년과 1989년에 걸쳐 팔라우내 2개주의 상수도 공사를 시행했고

쌍용건설에서는 팔라우 국립병원의 신축공사 또한 진행했었다.

한국에서는 팔라우와 끊임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일본측의 한국이 팔라우를 아에 무시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날조인 것이다.

한국에서 팔라우로 보낸 의사들

게다가 일뽕을 치사량으로 흡입한듯한 저 마지막 부분 역시 날조로

건설에 사용된 비용은 당시 여러 선진국들이 빈민국의 개발을 위해 무상에 가깝게 제공하던

'원조' 금액을 이용한 것으로 일본 스스로의 자본을 사용한 것도 아니였으며

그나마 팔라우는 일본이 1914년 부터 2차대전 전까지 식민지배를 하면서

강제 징용과 위안부 동원을 통해 수탈을 지속적으로 했었던 국가다.

근데 일본이 고마울리가 있나.....

2줄 요약

1. 일뽕 치사량 처맞은 놈들이 날조 사실 퍼뜨리고 다님

2. 다리 건설에 한국이 참가한 것을 맞음, 근데 그 다리의 붕괴는 일본 회사도 참가한 안전성 실험에서 예측하지 못한 것

 

일본놈들이 한국 탓이라며 비방했던 팔라우 날조 사건

한국의 기업이 팔라우에 만든 다리입니다. 깨끗하네요.

어? 붕괴했어?

KB 브릿지는 , 「Koror-Babeldaob Bridge」의 이름대로 수도 코로르섬과 공항이 있는 바베르드아브섬을 연결하는 다리에서 , 섬나라 팔라우의 교통의 요충으로서 1977년에 개통했습니다.
건설하기에 즈음해 일본의 카시마 건설도 견적을 보냈습니다만 ,
한국의 하청 회사가 일본의 반액으로 낙찰해 , 공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한 부실 공사였던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의 굳히는 방법조차 터무니없었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던 현지 주민은 당초부터 이 다리에 불안을 안고 있던 것 같아 , 차로 다리를 건널 때는 , 만약 바다에 떨어져도 곧 도망가도록(듯이)와 반드시 창을 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 준공 직후부터 다리의 중앙부가 굴곡 시작해 15t였던 통과 제한 중량이 곧바로 10t에까지 줄여졌습니다. 이 굴곡은 이윽고 , 통과할 때 이상한 흔들리고를 체감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 , 폭락 사고가 일어나는 무렵에는 , 서행 운전으로 건널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9월 28일 , 악몽은 현실이 됩니다.
KB 브릿지는 갑자기 두동강이에 접히고 바다에 꽂혔습니다. 

우연히 통행 차량의 적은 시간대였어요입니다만 , 1명 사망자도 나와 버렸습니다.
하시노우치부에는 전선 , 수도 , 전화선이 통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 팔라우의 라이프라인은 분단 되고 수도 기능은 마비. 한때는 국가 비상사태 선언도 나왔습니다. 이 때 , 팔라우와 자매 도시의 미에현으로부터는 컨테이너 공수로 음료수가 옮겨지고 있습니다.
팔라우 정부는 , 곧바로 다리를 만든 한국의 업자에게 배상 청구하려고 했습니다만 , 이 때 벌써 이 회사는 해산하고 있어 , 단서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겠지요? 이 건설회사는 1994년에 서울에서 폭락한 다리를 시공한 업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어찌할 바를 몰라할 뿐의 팔라우 정부였어요입니다만 , 일본에서는 우선 가설다리의 건설을 원조해 , 일본의 ODA 정부개발원조에 의해 약 30억엔의 새로운 다리를 무상으로 걸쳐 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시공에 해당한 것은 인연의 카시마 건설입니다. 공사중 , 현지의 사람들은 「카시마」라고 하는 말을 기억해 일본인을 눈에 띄면(자) 「고마워요 카지마」라고 얘기하는 아이도 아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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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  ^;

 

1. KB Bridge를 한국기업이 시공했다.(이 회사는 1994년 성수대교를 시공한 회사이다.)
 
2. 한국의 회사가 일본기업의 반액으로 공사를 수주, 부실공사를 일으켰다.
 
3.일본의 ODA정부개발원조에 의해 KB Brige가 새롭게 만들어 졌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 , 그러면 이제,
이 포스트를 통해 일본인들은 너희 한국인들은 부실공사를 일으키는 열등한 민족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부터 그 왜곡된 사실을 밝혀보겠습니다.

 

1. 팔라우 정부와 한국과의 기본적인 관계
 
-관계,
 

팔라우는 한국과 1995년 3월 22일 정식 수교를 맺었다. 주요인사 교류로는 1995년 9월 대사 이장춘이 독립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고, 1996년 5월과 1997년 6월에 대통령 나카무라가 비공식으로 방한하였다. 2002년 2월에는 대통령 토미 레멘게사우가 한국을 방문하여 대통령 김대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1995년 3월 대통령 특사 김정원이 팔라우를 방문하여 수교의정서에 서명하였다. 1997년 1월 의원 김도언이 나카무라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고, 1997년 5월 대사 이장춘이 무상공여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1998년 7월 대사 박동순이 미크로네시아 게임 개막식 참석 및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팔라우의 한국 교민수는 120여 명으로 규모는 적으나 팔라우 내에서 활발한 교민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팔라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강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 다리 밑에 건립되어 있다. 1999년 대한(對韓) 수출은 6만 달러, 수입은 249만 6000달러이다 


-. 한인들의 진출 현황 


o 인원 : 120여명(규모는 적으나 팔라우내에서 활발한 Community로 평가받음) 


o 현지 투자법인 
- Socio Micronesia Inc. (토목회사, 사장 이찬우, 괌거주)   ← 여기 주목,
- Hanpa Industrial Development Co. 
(건축 및 건자재회사, 사장 하순섭, 현지 거주) 


o 참고사항 : 2차대전중에 경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다리밑에 건립 


o 주요 건설 실적


- 중앙산업(69-73년) : 팔라우의 정화조, 상수도, 고등학교, 마이크로네시아 
- 유원건설(87-89년) : Pelelieu, Angaur 등 2개주의 상수도공사 시행 
- 쌍용건설(89-92년) : 팔라우 국립병원 신축 공사 시행 


o 건설 수주 실적
- 대우건설(99년부터 진행중) : Palau Compact Road(Babeldao섬 순환도로) 건설

 

 

 

2. 그렇다면, 성수대교를 지은 기업이 Koror-Babeldaob Bridge(이하 KB 다리)를 건설하였는가?

 

성수대교는 1977년 4월에 '동아건설' 에서 시공하였다. (관련자료;성수대교 붕괴 : 네이버 카페

 

 

그러나 KB 다리의 시공사는

-설계: Alfred A. Yee and Associates (미국) , Dyckerhoff & Widmann AG (독일)

-시공: Dyckerhoff & Widmann AG   

-청부: Socio Construction Co. (팔라우 과거 : 미국)으로

 

여기서 심각한 날조가 발각,

동아건설은 팔라우와 어떤 관계가 있지??????????????????????

 

 

 

그러므로 위에서 말하고 있는 일본측은 아마 대우건설이 99년부터 3년간 시행한 Palau Compact Road 건설(8000만불 상당)을 왜곡하여  선전한 것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KB 다리는 96년 붕괴)

 

 

 

3. Socio Micronesia Inc.는 한국기업인가?

 

거짓말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또다른 주장은 Socio Micronesia Inc.가 한국의 기업이고, 또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socio는 현지 투자법인, 그렇다고 해도 CEO가 한국계 사람이라고 해서, 그 기업이 한국기업이라고 주장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토요타에 아무리 외국자본이 참여하고 또 CEO가 외국인으로 바뀐다 할지라도 아무도 토요타가 일본기업이라는 것이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앞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다리 건설 당시에는 CEO가 한국인이었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이 기업이 현재 팔라우에 소속된 기업임은 부정할 수 없다.(동아건설은 아님이 위에서 판명,)

 

 

4. Koror-Babeldaob Bridge는 부실공사때문에 무너졌는가?

 

A spectacular collapse: Koror-Babeldaob (Palau) balanced cantilever prestressed, post-tensioned bridge 

Brian McDonald, Vijay Saraf and Bernard Ross

The 385.6 m (1265 ft) long, 18-year old, Koror-Babeldaob bridge (KB bridge) collapsed abruptly and catastrophically on September 26, 1996. The failure occurred during benign weather and loading conditions, less than three years after two independent teams of bridge engineers had evaluated the bridge and declared it safe, and less than three months after completion of a strengthening programme to correct a significant midspan sag that was continuing to worsen. The present paper** describes findings of an on-site inspection and structural analyses performed to assess long-term behaviour of the bridge, the increment of internal forces and deflections produced by the 1995 bridge retrofit repair, and principal factors that contributed to the collapse. Results of this investigation confirmed, both qualitatively and analytically, that the most probable cause of the KB bridge collapse was damage engendered by removal of the original concrete roadway surface.

→ KB Bridge 붕괴의 원인은 초기의 건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못된 補修 공사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면, K-B브릿지의 완공시점(77년)에서 붕괴시점(96년)까지의 편향도의 증가로 인해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도로 재포장 공사직후 붕괴했다. 근 20년간 안전진단상에서도 문제가 된것은 deflection이었다. 보강공사라는 것이 건축 자재를 보강하는 것이 아닌 구조자체에 대한 보강이라는 것이다.

 

즉 부실공사가 원인이 아니라 다리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군요. 참고로 이 논문은 라히프찌히 연례 토목 공학 보고서중의 하나로서 PDF파일로 아래에 올려 놓았습니다.

 

pdf파일은 조작이 안되니까 올립니다

l02_06.pdf

4. KB다리 아래의 한국인 노동자 위령비는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또다른 주장은 KB 다리 아래에 한국인 노동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으므로, 이 다리를 한국인이 건설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위령비는 팔라우다리의 붕괴와는 상관없이 2차세계대전중에 한국인 징용자와 위안부의 죽음을 애도해 설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 건설중이 아니고 90년대에 한 참 지나서 유동량이 많은 KB다리근처에 지어진 것인데 이를 두고 다리붕괴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측에 있다고 우기는 일본인들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사실, Koror섬은 일제 식민지 시절당시 한국인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강제징용을 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아픈 상처를 지닌 곳에 세워진 것이건만, 이마져도 일본인들이 다리를 재시공하면서 파괴해 버립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5. 시공식의 태극기는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또다른 왜곡은 시공식장에 태극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리를 한국기업이 건설하였다고 주장한다.

 

허나 다음 사진을 보자.

태극기와 동시에 성조기와 외국기가 하나 더 보인다.

즉 다시말해, 독일과 미국이 주 시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기외에 2개의 국기가 걸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정확한 확답은 할 수 없으나, 현지교민의 숫자나 영향력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한국인 교민이 활발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팔라우에는 일제당시 끌려간 강제징용자의 후손을 비롯한 120여명의 교민이 있고 다리근처에는 징용자와 위안부의 죽음을 기리는 희생자기념비가 있었으며 90년대 이후에 그러니까 다리가 붕괴된 후 기념비가 있다
 
 
 
 
 
6. 일본의 책임은 전무?
 
This led to two studies carried out by Louis Berger International and (((the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They concluded that the bridge was (((((safe))))) and the large deflections were due to creep and the modulus of elasticity of the concrete in
place being lower than anticipated.

1996년 다리가 붕괴되기 얼마전에 LBI와 JICA가 안전검사를 하였는데, 이중 JICA는 일본과 관련이 있다 즉, 일본기업이 다리가 안전하다고 통보함으로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져야할 일본의 의무이지만, 일본인들은 이부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상과 같이 KB 다리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이처럼 사실을 조작하여 한국인이 부실시공하여 무너진 다리를 일본인이 재시공해주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엄연한 날조임이 만천하에 들어난바, 이와 같은 왜곡된 사실은 더이상 넷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다.
 
 
 
 
 
3. 일본은 선심을 써, 팔라우에 ODA를 지불해 다리를 새로 놓아 주었다?
 
(아래 기사를 보자)
 
지난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제원조 공여국의 장관급회의를 소집해 최빈국에 대한 언타이드(조건없는 원조ㆍuntied aid) 이행 권고문을 채택한다. 

80년대 후반부터 미국ㆍ프랑스ㆍ영국 등이 저개발국가에 대규모 원조를 실시하면서 조건(tied)을 내걸어 무상원조가 강대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선진국들의 원조는 기술협력을 앞세워 무상으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원조금으로 집행되는 사업권을 원조 공여국의 기업이 수주하는 조건부 형색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선진국들은 타이드 원조를 최빈국에 대한 경제적인 진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무상원조를 많이 하면서도 기술협력의 비중에 치중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무상원조에서 기술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또 보자)

개도국 지원 1위는 덴마크...............
일본은 최하위 (빈국에 대한 실지 공헌도)
 
[연합뉴스 2005-08-30 ]

(워싱턴 AP=연합뉴스)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무역, 환경, 이민 등 여러 정책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선진국 가운데 빈국 지원에 가장 후한 나라는 덴마크라고 민간단체인 '세계개발센터'가 29일 밝혔다. 세계개발센터가 각국의 빈국 지원정책과 실적을 종합해 산정한 '개발지원지수'에 따르면 덴마크 이외에 네덜란드, 스웨덴, 호주,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대의 개발원조 공여국인 미국은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지원액 등 다른 분야에서는 뒤처져 12위에 머물렀다. 최하위는 일본으로 평가됐다. 이 지수는 선진 21개국의 빈국 지원정책을 평가해 긍정적인 정책에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부정적인 정책에는 감점을 가하는 방법으로 산정된다. 예를 들어 '기초적 지원' 항목에서는 납세자들의 자선단체 기부금 가운데 일부는 '옥스팜'이나 '케어'와 같은 국제구호기관에 지원된다는 가정 아래 이 같은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정부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여하며 빈국에 현금지원을 하면서도 이 금액을 해당국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에 사용토록 제한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점수를 깎는다.

이 지수는 빈국에 대한 지원의 양적, 질적 측면 이외에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개방성, 투자정책, 이민, 환경, 안보정책, 신기술 전파 지원정책 등 다양한 정책적 요인들이 고려된다. 각 항목별 평균을 5.0으로 했을 때 미국은 '지원' 항목에서 1.9로 가장 낮게 평가된 반면 '무역' 항목에서는 7.2로 최고점을 받았다. 일본은 자국 어업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과 막대한 양의 열대 지방 목재 수입, 국제수역에서의 어자원 남획에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특히 환경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개발지원지수' 작성 책임자인 데이비드 루드먼은 "1위를 차지한 덴마크조차도 7개 정책 항목 가운데 4개 항목에서는 평균 점수에 머물렀다"면서 "전세계적으로 번영을 확산시키기 위해 모든 국가들은 더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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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는지?

일본은 어디가 선심적 ODA를 베풀어 다리를 지원??

 

결국, 과도한 ODA를 빌미로 팔라우에서 막대한 목재등을 수입하고 남획을 하는등

 

자국의 이득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래 기사로도 알 수 있다

 

(인용문)

최근 터키가 국제원조를 요청한 경전철 공급사업에 스페인과 일본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경전철 사업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국제원조 지원국가의 기업이 사업권을 따내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다. 스페인은 2억달러 규모의 원조자금을 앞세워 자국기업의 경전철 사업권 수주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에 맞서 이자율이 낮은 엔화 지원을 앞세워 맞불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아시아는 물론 동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스페인과 일본의 원조 물량 공세에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팔라우에 일본은 어떤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살펴 보자  

 

 팔라우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은 1543년의 스페인인 루이 로페즈 드 빌라로보스로 스페인은 1686년 섬에 대한 소유권을 제기했으나 발전이나 식민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그후 미국-스페인의 전쟁으로 허약해진 스페인은 팔라우를 독일에 팔았고  독일은 1899년 통제권을 획득해 서양에서 전래된 질병으로 주민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코코넛농장의 노예등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팔라우를 1914년부터 2차 대전 종료까지 점령했다. 이 기간은 팔라우의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로 일본어의 방언이 섬에 전래됐으며 마을 족장은 일본 식민지 통치자에 의해 영향력을 상실한다.독일이 팔라우인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질병감소에 힘쓰듯 전시체제와 수탈을 위해 코로르가 도로 포장과 전기와 파이프를 통한 물의 공급등이 이뤄진다  수 천명의 일본인, 한국인, 오키나와인 노동자가 이주했으며 전통을 계승하던 패턴은 자신의 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산산이 파괴됐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팔라우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섬들을 통해서 군사 요새화에 노력을 집중한다. 2차 대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팔라우에 위치한 일본의 군사시설은 연합군의 공격목표가 됐으며 펠렐리우와 앙가우르 섬에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그야말로 팔라우는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만다

 

일본은 과거에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이토록 아름다운 팔라우에 여기 저기 동굴을 뚫어 경관을 망치고 그 곳에는

아직도 일본측으로 부터 끌려간 강제징용자와 위안부가 죽어나간 기념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 이것 뿐인가?

 팔라우에서 고래잡이

돈 줄 쥔 일본, 마음대로 고래사냥 나서나

[오마이뉴스   2006-06-21 23:06:16]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공공연하게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아시아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이들을 회의에 끌어들여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매수한 나라만 20여개국에 이른다. 이번 회의에는 캄보디아와 마샬군도, 말리, 감비아, 토고 등이 처음으로 참가해 일본 편을 들었다. 이번 회의 개최국인 세인트키츠네비스와 앤티가바부다, 나우루, 팔라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스, 수리남, 투발루 등 이름조차 생소하고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몽골이나 말리처럼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국가도 고래잡이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 정부 대표는 회의에서 일본 측 의견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제회의장을 돈으로 더럽히는 파렴치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돈 줄 쥔 일본, 고래사냥도 마음대로? - 오마이뉴스

정말로 팔라우에 사과하고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야마토 자신인 것이다

끝으로
무식한 일본인들과 사실을 뻔히 보고도 영어를 몰라서 그런것인지 날조를 위해서인지 K-B브리지의 붕괴원인이 한국에게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일본인을 위해서 증거를 올린다.

첫째 K-B브리지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pre-stressed concret box girder cantilever 이다.

즉 그 당시 검증이 덜된 공법을 이용한 다리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설계자가 alfred A. yee이라는 이라는 이름을 보고 한국인이라고 단정하지만 그가 동양인인건 맞다. 그리고 그는 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과 American Concrete Institute 의 명예 회원일 정도로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즉 일본인들이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내용에서 알수 있듯이일본과 영국의 감리 회사는 K-B브리지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1993년 ABAM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감리를 하고 나서 시작된다. ABAM은  앞으로 추가적인 휨이 발생할 것이고,  추가적인 휨을 방지하기위해서 외부에 추가로 Post-tensioning을 제안했다.

Mstthias이것이 붕괴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ABAM의 요청에 따라 8개의 추가적인 외부의 post-tensioning작업을 하게된다.이러한 추가적인 작업은 시간에 따른 응력변형을 무시한것이였기 때문에 응력분포에 발란스가 깨지게 되어 K-B 브리지는 어느날 갑자기 취성 파괴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역학적 해석은  다리가 취성파괴를 일으킬만한 어떠한 초과한 하중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콘크리트의 품질 조차도 이러한 다리의 갑작스런 파괴와는 관련이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관련 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6220744/http://aspdin.wifa.uni-leipzig.de/institut/lacer/lacer02/l02_06.pdf
Matthias Pilz report,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추가적으로 장착되었던 8개의 post-tenssioning이 다리의 발란스를 무너트려서 취성파괴가 일어난 것이라고 볼수 있다.즉,한국의 건설이나 K-B브리지의 설계자체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그건 외부적인 요인 ABAM의 감리에서의 실패가 될수도 있고 외부의 온도 변화가 문제가 됐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것은 본설계나 시공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번역자 : veniseo)  
사건보고서를 접했을 팔라우정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국기업을 상대로
소장이나 배상금을 지불요청했다는 근거나 쏘쓰를 주세요
아니면 이에 관한 일본측 자료나 기사라도 주세요,
 
일본측이
K-B Bridge 붕괴의 한국 책임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1. 하도급 업체인 Socio社는 한국 기업이다.

2. 다리 붕괴의 전적인 책임은 시공한 팔라우법인Socio에 있으며,
설계와 감리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3. 팔라우 정부는 다리 붕괴의 책임 보상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였다.
 
이정도 설명하면 아무리 무식한 일본인이라고 K-B브리지의 붕괴원인이 한국의 건설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K-B브리지에 대해서 한국의 건설이 주된원인이였다는 망언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